오늘 있었던 일

기록 2015. 6. 19. 22:46

사실 익명이고 내 블로그임에도 완전 100% 솔직함을 담진 못 할 것 같다.

왠지 이 글을 쓰는 것이, 나중엔 실이 될 수도 있을 것도 같다.

당장이라도 잊고 싶은데, 굳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.

그냥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어서?

출근길에 지하철을 탔고,

어떤 할아버지가 나한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했다.

사실 첫 마디만 듣고는 온 몸이 굳은 것마냥 움직일 수가 없었고

내 귀로 웅웅대는 그 욕짓거리가 정확하게 무슨 단어인지 들리지가 않았다.

힐끔 힐끔 쳐다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날 더 움직일 수 없게 했다.

어서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데 손이 떨리고 몸에 힘이 들지 않았다.

계단을 오르며 휘청했다.

내 잘못인가?

자책하는 마음이 일순간에 날 휩싸았다.

그냥 내가 비켜줬으면 될 걸, 그 자리를 피해버릴 걸.

생에 태어나 누구에게도 그런 욕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.

오늘 듣는구나.

자꾸만 손이 떨리고 그 이후에는 민망함이 찾아왔다.

지하철에서 마주보고 있는 모든 사람이 방금 일을 아는 것만 같았다.

우연히 마주친 눈빛에서도 움찔하며 작아졌다.

나는 작게라도 나를 위로하고 싶었나보다.

사무실에 들어가는 길에 매일 지나쳤지만 한 번도 들어간 적 없던 커피숍에서

제일 달 것 같은 음료를 테이크아웃 했다.

별로 안 달았다.

단 거라도 마시면 조금 나아질까 싶었는데.

자꾸 위로받고 싶었나보다.

하루 종일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됐다.

기억하기 싫어서 고개를 휘저어도 계속 떠올랐다.

친구를 만나서 그 얘기를 하는데 하루 막바지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.

상처받은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.

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계속 되새기면서 마음의 상처만 커졌던 걸까?

미친 노인네한테 재수없게 당한 거라고 그냥 잊으라는 친구의 말

오늘 자고 내일 아침이 되면 이 일을 더이상 떠올리지 않았으면 싶다 나도.

퇴근길에 지하철 계단을 다시 오르는데

아까의 일이 선명하게 재생되면서 가슴이 쿵쾅거렸다.

재수없게 또 그 노인네를 볼까봐.

계단을 올라가는데 지하철이 막 들어오나 보다.

사람들이 뛰기 시작한다.

나는 뛸 힘도 없다. 

다음 전차를 타려고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데 내 바로 앞에서 천천히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는 한 아저씨가 보인다.

다리가 불편하신 것 같았다.

손잡이를 잡고 한 칸 한 칸을 온 힘을 다해 올라가는 그 분을 보면서.

그 옆을 빠르게 뛰어 지나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

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.

애써 쏟아지려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고 생각해봤다.

왜 이렇게 슬프고 마음이 아픈걸까?

나는 일면식도 없는 그 사람을 보면서 아까의 무기력하던 나의 모습을 보았나 보다.

마음이 너무 아프다.